제8화왼손
왼손에 적힌 것부터 읽습니다. 그다음 옷 안. 매번 그렇게 시작합니다.
1. 너는 T999다.
2. 오른손은 돌에만 쓴다. 다른 데 쓰지 말 것.
3. D는 발소리가 없다. 놀라지 말 것.
4. 무서움은 없어졌다. 찾지 말 것.
5. 너는 파랗다. 원래 그렇다.
6. 물어볼 것은 아래에.
아래는 비어 있습니다. 어젯밤에 다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손바닥이 여섯 줄로 끝나서 다행입니다. 일곱 줄이 되면 손목까지 가야 합니다.
다섯 번째 줄의 앞부분은 읽지 않아도 보입니다. 제가 파랗다는 것 말입니다.
손가락 하나 두께쯤 되는 파란빛이 손끝부터 온몸을 따라 돌고 있습니다. 어두운 데서는 제 손이 저를 비춥니다. 그래서 왼손을 읽는 데 조명이 필요 없습니다. 편리합니다.
그래도 적어 둔 건 잘한 일입니다. 처음 보면 물어볼 게 하나 늘어나니까요.
글씨도 파란색입니다.
손끝으로 피부 위에 획을 긋고, 그래요, 하고 동의하면 빛이 그 자리에 남습니다. 닿기 어려운 곳에는 손끝의 빛을 조금 뻗어 보냅니다. 잉크가 아니라서 씻어도 안 지워집니다. 캡슐이 매일 몸을 씻는데 한 번도 지워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습니다.
손은 남에게도 보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손에는 확인할 것과 물어볼 것만 씁니다.
옷 안, 그러니까 옷에 가려지는 몸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D가 다른 사람은 알면 안 된다고 한 것들입니다. 캡슐에서 나오면 옷을 입기 전에 전부 읽습니다. 다 읽으면 입습니다. 입으면 손만 남습니다.
옷 안은 아직 많이 비어 있습니다. 왼팔 안쪽에 세 줄뿐입니다. 서른한 층이라고 하니까, 층마다 한 줄씩만 적어도 서른한 줄은 들어가야 합니다. 어디까지 갈지 재 봤습니다. 배꼽쯤입니다. 그 아래는 안 쓰고 싶지만, 쓰게 되면 쓸 겁니다.
게이트 이야기는 손등에 있습니다.
"파워 100%. 개체 식별 완료."
게이트의 파란 막이 저를 통과시키지 않고 저한테 붙어서 같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파랗습니다.
그다음은 조용했다고 합니다. 위쪽 난간 너머에 여러 사람이 서 있었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제 쪽으로 다가온 사람은 D뿐이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누군가 "백이야. T71 이후로 처음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었다고 합니다. "T71이 누구예요?"
그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D가 저를 데리고 그곳을 나왔다고 합니다.
포격장 앞 복도를 지나, 별도의 임무 구역으로 갔다고 합니다. 열린 포격장 문 너머로 발판이 백 개쯤 보였다고 합니다. 저는 한 번도 올라서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포격 안 해요?"
"안 해요."
"왜요?"
"백이 아까워서가 아니에요. 백은 끝까지 내보내면 남는 게 없다는 뜻이에요. 온전히 한 번 쏘면 기억이 다 나가요."
"이 파란 건요?"
"안에 담아 둘 데가 없어서 밖으로 새는 거예요. 그게 백이에요."
"그럼 저는 뭘 해요?"
"맨손이에요."
이건 손등에 있는 이야기라 매번 읽습니다. 매번 처음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읽고 나면 알게 되니까 괜찮습니다.
연습층에는 밤에 내려갑니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이 쓴다고 해서요. 그리고 제가 복도를 지나가면 벽이 파래져서, 자는 시간에만 다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어제까지 몰랐습니다. 오늘 알게 됐습니다.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있습니다.
맨손의 줄은 첫 번째 돌만 씁니다.
손을 올려놓습니다. 오른손입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돌에는 금이 한 줄 가 있습니다. 금은 돌이 갈라지고 싶은 방향입니다. 제 손은 그 방향에 동의해 주는 겁니다. 그러면 돌이 스스로 갈라집니다.
D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설명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빈 돌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연습용 돌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갈라지고 싶은 방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돌만 미지근해집니다. 파란빛이 손에서 돌로 조금 옮겨 갔다가, 손을 떼면 돌아옵니다. 돌에 남는 건 온기뿐입니다.
매일 밤 그랬습니다. 며칠인지는 모릅니다. 돌 윗면이 반들반들해진 정도로 짐작만 합니다.
D는 "진짜 돌은 대답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안 하면요?"
"할 거예요."
"안 하면요?"
"……그때는 그때 물어봐요."
저는 그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안 하면: 그때 물어볼 것.
며칠 전부터 밤에 내려올 때마다 다른 두 줄에도 돌을 깬 흔적이 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갈라진 돌이, 오른쪽에는 가루가 남아 있었습니다. 낮에 두 사람이 연습하고 간 자리라고 D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손목에 적어 두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그 두 줄부터 봤습니다.
가운데 줄은 돌이 전부 반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금을 따라서. 아주 얌전하게. 갈라진 면이 매끈해서 손으로 만져 보고 싶었지만 오른손을 내밀지는 않았습니다. 깨지 않을 돌에는 함부로 대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왼손으로 만졌습니다. 왼손은 규칙에 없으니까요.
오른쪽 줄은 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루만 있었습니다. 줄 전체가요.
"누구예요?"
"망치는 T17. 폭탄은 T956."
"둘 다 낮에 하는 사람들이에요?"
"네."
"그 사람들은 저를 알아요?"
"아니요."
"왜요?"
D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D는 대답을 안 할 때도 있지만, 저한테는 대부분 합니다. 왜 저한테는 대답해 주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대답도 손목 안쪽에 적어 두었습니다.
"당신은 어차피 잊으니까요."
그게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직해서요.
"당신을 보면 그 사람들은 물어볼 거예요. 파란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대답할 거예요. 전부."
"네. 전부 할 거예요."
"그래서예요."
"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게 있어요?"
"우리가 갈 별의 지하에서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거요."
"저 그거 알아요?"
"어제 물어봤어요. 옷 안에 있어요."
"아.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그 별의 지하에서 돌아온 사람 있어요?"
"없어요."
"T71은요? 손등에 있는 사람."
"당신 전에 맨손으로 돌을 깨던 사람이에요. 서른 층을 통과했고, 하나 남기고 기록이 끝났어요."
"왜요?"
"몰라요."
"그 사람은 백이었어요?"
"네."
"그 사람은 포격을 했어요?"
"했어요. 그때는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내려가기 전에 이미 기억이 많이 사라져 있었어요. 당신은 안 시켜요. 그게 제가 바꾼 유일한 거예요."
"저는 돌아와요?"
D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입니다. 저는 왼손 여섯 번째 줄 아래에 적었습니다.
돌아오는지: 모름.
이건 손에 적어도 됩니다. 모름은 비밀이 아니니까요. 없음, 이었으면 옷 안이었을 겁니다.
글씨가 좀 삐뚤어졌습니다. 왼손 손끝에서 빛을 끌어 같은 손목까지 보내려니 획이 자꾸 휘었습니다.
조명이 치직, 하고 깜빡였습니다.
몇 번째인지는 모릅니다. 세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D가 했습니다. 그 사람 이름을 물었더니 T17이라고 했습니다. 망치인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아직 못 봤지만, 세는 사람은 대체로 좋은 사람입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오늘은 대답할 거예요."
D가 말했습니다.
"연습용 돌인데요."
"손을 뗀 뒤에도 돌에 빛이 조금 남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보낸 힘이에요. 오늘은 그걸 따라가 봐요."
"제 힘이 돌 안에 남았다는 뜻이에요?"
"네."
"그럼 제 것을 깨는 거네요."
"네."
"알겠습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손바닥 네 번째 줄에 적힌 대로입니다. 무서움은 없어졌습니다. 아마 게이트에서 백이 찍힐 때 제일 먼저 나간 게 그것일 겁니다. 찾지 말라고 적어 둔 건 잘한 일입니다. 찾으면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오른손을 올려놓았습니다.
미지근했습니다. 늘 그랬던 온도였습니다.
파란빛이 손에서 돌로 옮겨 갔습니다. 늘 그랬던 만큼이 아니라, 전부. 손이 어두워지고 돌이 파래졌습니다. 금이 간 자리가 제일 밝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금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쪽으로, 라고 했습니다.
말은 아니었습니다. 방향이었습니다. 저는 동의했습니다. 동의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래요, 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돌이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돌이 모래가 됐습니다. 금이 간 자리부터 시작해서, 안쪽으로, 전부 다. 손바닥 아래에서 돌이 없어지고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습니다. 소리는 모래 소리뿐이었습니다.
모래는 파랗지 않았습니다. 빛이 돌아왔습니다. 손끝부터. 아까보다 조금 얇아진 것 같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비교할 게 손등에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무언가 들어왔지만, 읽을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눈앞에는 모래가 있고, 그 위에 제 손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괜찮아요?"
D가 물었습니다.
"네. 무슨 기억이 나갔는지 확인해 볼게요."
저는 왼손을 폈습니다.
1. 너는 T999다.
2. 오른손은 돌에만 쓴다. 다른 데 쓰지 말 것.
3. D는 발소리가 없다. 놀라지 말 것.
4. 무서움은 없어졌다. 찾지 말 것.
5. 너는 파랗다. 원래 그렇다.
6. 물어볼 것은 아래에.
돌아오는지: 모름.
전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손등도 읽었습니다. 게이트. 백. T71. 전부 있었습니다.
손목 안쪽도 읽었습니다. "당신은 어차피 잊으니까요."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목 조금 위에 두 줄이 더 있었습니다.
T17: 망치. 작게.
T956: 폭탄. 크게.
글씨가 제 글씨였습니다. 삐뚤어진 걸 보면 오늘 쓴 겁니다.
"이건 누구예요?"
D는 제가 가리킨 두 줄을 보고 대답했습니다.
"내일 만날 사람들이에요."
"아. 그럼 내일 알게 되겠네요."
저는 그 아래에 하나 더 적었습니다.
내일: 두 사람. 물어볼 것 많음. 파란 거 먼저 설명할 것.
조명이 다시 깜빡였습니다. 몇 번째인지는 모릅니다. 위에서 누가 세고 있을 겁니다.
올라가기 전에 맨손의 줄을 한 번 더 봤습니다. 첫 번째 돌이 있던 자리에 모래가 얕게 깔려 있었습니다. 두 번째 돌부터는 그대로였습니다. 열 개 남짓 남아 있었습니다.
"이거 다 해야 해요?"
"아니요. 내일 내려가요."
"진짜 돌은 이것보다 커요?"
"네."
"그럼 더 많이 나가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무서움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그 자리에 대신 궁금한 게 들어 있습니다.
궁금한 건 잊어버려도 다시 생깁니다. 오늘 밤에 확인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겁니다. 적어 둘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적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이 이야기 속 별을 게임에서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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