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37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이야? 스스로 관리하면서 적당히 해야지."
나는 입을 삐쭉 내밀고 옆 발판에서 쓰러진 T956을 바라봤다.
저렇게 쓰러져 실려 간 사람들은 회복실에서 며칠 쉬고 돌아오곤 했다. 몸은 멀쩡해져서.
그러니까 걱정은 안 했다. ……라고 해 두자. 걱정했다고 하면 없어 보이니까.
아니, 진짜로. 98이 뭐야, 98이.
나 여기서 제일 오래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최고 기록이 97이었다. 물론 내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97 때도 다들 난리가 났었다. 근데 98? 그것도 첫날에?
그것도 포신 잡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저건 반칙이다. 어디 신고할 데 없나.
한 방에 그걸 다 써? 나 같으면 못 한다. 아니, 안 한다.
하얀 옷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다.
쟤들은 맨날 뛴다. 저렇게 뛰어오면 구경하는 나까지 놀라잖아.
나는 들것에 T956이 눕혀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포신을 놓았다. 괜히 잡고 있었다. 내 차례도 아닌데.
T956이 실려 나가는데 나는 손을 흔들어 줬다. 당연히 못 봤겠지. 기절했으니까.
그래도 흔들었다. 예의니까.
"잘 가! 회복실 큐브는 여기보다 좀 덜 짜니까 기대해!"
옆 발판의 TW22가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은 내가 아주 잘 안다. "또 시작이네"라는 눈빛이다.
"뭐. 사실이잖아."
TW22는 대답 대신 앞을 봤다. 재미없는 사람이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여기 와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후자일 거다.
여기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T17."
천장에 있는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네네, 갑니다."
발판에 올라서면 늘 그렇듯 발바닥이 미지근해진다. 포신은 사람 손 같은 온도다. 처음엔 이게 진짜 소름 끼쳤는데, 이제는 그냥 누가 손을 잡아 주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 내 나름의 요령이다.
요령이 하나 더 있다. 크게 쏘지 않는 것. 이건 말해 줘도 다들 숫자부터 본다. 37 쏘는 애한테 뭘 배우겠냐는 얼굴로.
포신을 잡으면 머릿속에 소리가 금방 떠오른다. T956처럼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떠오른 걸 전부 말하면 안 된다. 소리가 또렷해질수록 포신을 쥔 손에도 힘이 가득 차오른다. 그때 다 내보내면 기억도 많이 잃는다.
나는 처음 들리는 짧은 조각 하나만 소리 낸다. 나머지가 이어지기 전에 입을 다물고 손을 뗀다.
그럼 표적에 닿는 힘도 작고, 사라지는 기억도 적다. 37은 그렇게 맞춘다.
"레(re)."
구체 표면에 접시만 한 빛이 반짝, 하고 사라졌다.
"도달률 37%."
"봤지? 37. 완벽해."
TW22는 이번에도 안 쳐다봤다.
"아니 진짜 완벽한 거라니까. 예선은 못 붙고, 잘리지도 않고. 이걸 맞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36 나온 날은 진짜 식은땀 났다니까."
"……."
"그날이 언제였더라. 기억 안 나네. 하여튼 있었어."
기억 안 나는 게 좀 많긴 하다.
그건 여기 오래 있으면 다 그렇다. 쏠 때마다 기억이 조금씩 사라진다. 무슨 기억이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사라진 자리만 남는다. 그래서 작게 쏘는 거다.
이거 진짜 중요한 정보인데 아무도 안 물어본다. 다들 열심히만 한다. 열심히 하다가 98 찍고 기절한다.
난 안 그런다. 난 똑똑하니까.
연습이 끝나고 아까 "미아"라고 쏜 여자 옆에 가서 앉았다. 자기 손바닥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처음부터 그렇게 힘주지 않아도 돼. 앉아서 좀 쉬어."
"……미아가 뭐예요?"
"몰라. 네가 말한 건데."
"그렇구나."
여자는 다시 손바닥을 봤다. 나는 뭐라고 더 말해 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이런 순간에는 말이 많은 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나도 안다. 알면서도 하는 거지만.
그러고 있는데 D가 다가왔다. 발소리도 없이. 저 사람은 진짜 발소리가 안 난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물어보면 또 대답 안 하겠지만.
"T17. 오늘도 37이네요."
"제 시그니처잖아요."
"당신 생체 점수, 한 번도 9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관리가 잘된다는 거죠. 저 좀 칭찬해 주세요."
D는 칭찬해 주지 않았다. 대신 T956이 실려 나간 문 쪽을 봤다.
"저 사람, 이번에 바로 본선에 올릴 거예요."
"네? 예선도 안 치르고요?"
"네.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
그 말에 나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투덜거리던 게 목구멍에서 딱 멈췄다.
"……뭐가요?"
D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장 조명이 치직, 하고 깜빡였다.
D가 위를 봤다. 나도 봤다.
나는 세는 버릇이 있다. 오늘 여섯 번째.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땐 며칠에 한 번 깜빡였던 것 같다. 아니, 그건 기억이 아니라 추측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 둘이 잘 구분이 안 된다. 그것도 좀 짜증 나는 일이다.
"T17."
D가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낮았다.
"언젠가 37보다 더 보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어요."
"더 보내고 나면 저한테 뭐가 남는데요."
D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감응 시간, 이 우주선에서 제일 짧아요. 기록에 다 남아요."
그리고 가 버렸다. 발소리도 없이.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니, 그렇게 말하고 가면 어떡해요"라고 했지만 당연히 안 돌아봤다.
밤마다 하는 일이 있다.
이건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남들이 알면 좀 없어 보이니까.
이름의 벽 앞에 가서 내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있었다. T17. 오늘도 있었다.
"오케이, 아직 살아 있음."
나는 손끝을 대지 않고 허공에서 글자를 한 번 따라 그렸다. D 흉내였다. 물론 내가 한다고 새로 새겨지지는 않는다.
안 지워졌으면 됐지.
내 이름 옆에 손톱만 한 빈자리가 하나 있다.
그냥 금속이다. 긁힌 자국도 없다.
근데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저기서 한 번 멈춘다. 왜 멈추는지는 모른다. 그냥 멈춰진다.
저기 있던 이름은 T71이었을 거다. 아마.
T71은 친절했다. 나랑 자주 떠들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떠들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본선에서 이기고, 임무를 나갔다. 그 뒤로는 못 봤다.
처음에는 누가 돌아올 때마다 T71도 왔느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언제부터 안 묻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벽에서도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서 자꾸 여기서 멈춘다. 확실하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그래도 다른 자리 같지는 않다.
그 빈자리 바로 아래에 새로 새겨진 글자가 있었다.
T956.
금속 가루도 아직 덜 떨어진 글씨였다.
"야, 98프로."
나는 벽에 대고 말했다. 당연히 대답은 없다. 걔는 지금 회복실에 있다.
"너 진짜 재수 없어. 알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근데 아까 격납고에서 느낀 거랑은 좀 다른 감정이었다.
걔는 다음 차례에도 망설이지 않고 올라섰다. 한 번 쏘고 나면 무엇을 잊었는지 확인하는 나와는 달랐다.
아직은 잃는 것보다 해 보고 싶은 게 많은 걸까.
그게 부러웠다. 도달률보다 그게.
조명이 또 깜빡였다. 일곱 번째.
"자꾸 깜빡이지 마. 신경 쓰이니까."
천장도 당연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빈자리를 한 번 더 보고 벽에서 돌아섰다.
이 이야기 속 별을 게임에서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Sector31』은 2027년 초 출시 예정인 퍼즐 전략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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