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Sector31』

제10화창문

출발 전에 벽에 갔다. 마지막이라서 간 게 아니다. 매일 가니까 간 거다. 그렇게 해 두자.

T17. 있었다. 오케이.

빈자리. 있었다.

T956.

그리고 그 아래에 하나 더 있었다. T999.

새긴 지 얼마 안 된 글씨였다. 여기 이름은 다 D가 새긴다. 그런데 저건 다른 이름들보다 유난히 깊었다.

꾹꾹 눌러 새긴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거다.

오늘 깜빡인 횟수. 여덟. 아직 아침인데 여덟.

그리고 나는 이제 이걸 못 센다. 내려가니까.

그 생각을 하니까 이상하게 섭섭했다. 조명한테 섭섭한 게 말이 되나. 되는 모양이다.

강하정은 선미 출항 구역의 정박대에 놓여 있었다.

임무 구역에서 길고 좁은 연결 통로를 따라가자 두꺼운 문이 열렸다. 포격장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그 문을 넘어온 건 처음이었다.

문이 닫히자 익숙한 포격장의 기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승선교를 건너 강하정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이 셋, 그 앞에 창문이 하나 있었다.

창문이 있었다. 이 우주선에서 처음 보는 창문이었다.

"창문이네요."

T999가 제일 먼저 말했다. 그리고 손목에 적었다. 창문: 있음.

"그것도 적어?"

"있는 줄 몰랐던 거니까요."

그건 그렇다.

D는 승선교 아래에 서 있었다. 올라오지 않았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내가 말했다.

"돌아오면 칭찬해 줘요."

D는 대답하지 않았다.

근데 대답 안 하는 것도 대답이라고 파란 애가 그랬으니까, 그걸로 하자.

문 위에 불이 들어왔다.

"자동항법 시작. 착륙 지점 확인."

아무도 손댄 게 없는데 정박 장치가 풀렸다. 강하정이 출항구를 빠져나갔다.

소리 없이. 이 우주선은 뭐든 소리가 없다. 그게 제일 먼저 익숙해지고 제일 나중까지 싫다.

창문 밖으로 방금 떠나온 우주선이 보였다. 우리 기억이 처음 시작된 곳.

크고, 낡고, 검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밖에서 봐도 없었다.

그리고 겉면의 등 하나가 치직, 하듯이 깜빡였다.

"밖에서도 깜빡이네."

"몇 번째예요?"

"……아홉."

"안 적을게요."

"고마워."

그다음에 별이 보였다.

검었다. 격납고의 표적처럼. 빛을 조금도 돌려보내지 않는 검은 공.

근데 표적이랑 다른 게 있었다.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파란 테가 있었다. 손가락 하나 두께쯤.

나는 T999를 봤다. T999도 창문을 보고 있었다.

"별도 백이네."

내가 말했다.

"별도 새는 거네요."

T999가 말했다. 그리고 적었다. 별: 파랗다. 나랑 같음.

내려가는 동안 T999는 계속 물었다.

표적은 뭐예요. 발판은 왜 미지근해요. 회복실 큐브는 진짜 덜 짜요. 세는 건 언제부터 했어요.

나는 다 대답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다. 모른다고 하면 T999는 "그럼 모름으로 적을게요"라고 했다.

그러다 알았다. 이게 내 역할이구나. 얘한테 대답해 주는 거. 37을 서른 번 맞추는 것보다 이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T956은 한마디도 안 했다. 폭탄을 무릎에 올리고 창문만 봤다.

몸이 무거워졌다.

몸이 좌석에 더 깊이 눌렸다. 팔을 들자 아래로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가볍게 쥐고 있던 망치 자루를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무거워."

"네."

T956이 대답했다. 근데 얼굴이 이상했다. 폭탄을 한 번 들어 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똑같아요."

"뭐가."

"폭탄 무게는 그대로예요. 여기서는 다른 것도 다 무거워지네요."

걔는 내 망치를 보고, 자기 폭탄을 봤다.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그게 좋아?"

"혼자만 무거운 걸 든 것 같지는 않아서요."

T999가 적었다. 별에 오면 망치도 무거움. 폭탄은 그대로.

스피커에서 소리가 났다. 지직거리는 잡음. 그 사이로.

"여기는……. 여기는……."

D가 T956한테 들려줬다던 그 말이었다. 목소리는 달랐다. 여러 명이었다. 다 같은 말에서 멈췄다.

T999가 스피커를 봤다.

"대답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

"여기는 별이라고요."

"……내려서 해."

강하정은 소리 없이 별에 내려앉았다. 문이 열리자 스피커가 말했다.

"착륙 완료. 지상 대기. 모선 통신 연결 유지."

우리가 내린 뒤에도 문은 열려 있었다.

땅이 회색이었다. 하늘은 검었고, 하늘의 가장자리도 파랬다. 안에서 보니까 그랬다.

건물이 몇 개 있었다. 낮고 네모나고, 문이 다 열려 있었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열 명쯤. 움직이지 않았다. 강하정을 보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걸어왔다. 천천히. 걷는 법을 방금 떠올린 사람처럼.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멈췄다. 다시.

"여기는……."

T999가 앞으로 나갔다. 파란빛이 회색 땅에 번졌다.

"여기는 별이에요. 당신은 여기 살아요."

그 사람이 T999를 봤다. 한참 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파랗다."

끝까지 간 말이었다.

그 사람이 한 말 중에, 우리가 들은 것 중에, 처음으로 끝까지 간 말.

T999가 적었다. 별 사람: 파랗다, 라고 함. 끝까지 함.

"이건 옷 안에 적을 거야?"

내가 물었다.

"아니요. 이건 손에요. 좋은 거니까요."

입구는 건물 사이에 있었다.

땅에 뚫린 구멍. 계단. 임무 구역에서 연습층으로 내려가던 계단과 폭도 경사도 비슷했다. D가 왜 그 아래에 연습실을 만들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계단 앞에 서자, 강하정의 스피커가 뒤에서 말했다. 격납고 천장의 그 목소리였다.

"복원층 진입. 이름을 부르기까지 31층 남음."

서른하나.

여기는 깜빡일 조명이 없다. 셀 게 없어서 손이 심심했다. 그래서 층을 세기로 했다. 남은 층은 저 목소리가 세어 줄 테니까, 나는 내려간 층을 센다. 지하 1층부터 지하 31층까지.

이건 안 세고 싶었는데. 근데 세는 사람은 나니까.

"하나. 지하 1층."

내가 말했다.

"적을까요?"

"아니. 이건 내 거야."

"알겠습니다."

"내려가자."

"네."

"네!"

파란 애가 제일 먼저 계단에 발을 올렸다.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돌에만 쓰는 손이니까.

T956이 그 뒤를 따랐다. 폭탄을 두 손으로 들고.

나는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마지막이 세는 사람 자리다. 앞에 둘이 있는지 세면서 가야 하니까.

이 이야기 속 별을 게임에서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Sector31』은 2026년 겨울 출시 예정인 퍼즐 전략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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